발단은 수업시간이였습니다. 주간 내내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머리 속에서 공방 중이였습니다.
사회 수업 시간이 되어서 선생님께서 들어오셨죠. 수업 시작 전에 어제 분향소를 다녀오셨다고 밝히셨습니다. 그러자 아이들이 웅성댑니다. 그 아이들 중 한명이 아직 분향소는 닫지 않았다고, 오늘도 가면 추모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구요. 선생님께서는 ‘이건 대한민국 역사의 한 사건이고, 가지 않으면 후회할 수도 있다.’라고 말씀을 하시고 수업을 시작하셨습니다. 순간 머리에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습니다. 한번 가봐야 되겠다고…
그렇게 같이 갈 뜻이 맞는 친구들이 5명이 생겼습니다. 선생님께서는 공부는 1시간만 하고 한번 가 보라고 흔쾌히 승낙해 주셨습니다. 감사합니다.
그렇게 29일 오후 8시에 출발해서 9시 10분 쯤인가 화랑 유원지에 도착했습니다. 미술관 옆에 분향소 천막이 있었습니다. 영결식도 끝났고 해선지 사람들은 4~5줄밖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. 나누어 주는 국화꽃을 들고 줄을 섭니다.
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, 어릴 적 교회를 아는 아줌마 권고(?)로 다니면서 ‘절 하는건 우상숭배’라는 거만 열심히 기억해서 외할머니 제사 때 절을 안했었습니다. 물론 지금은 후회도 되고, 무교입니다. 그런 제가 여기서 절이나 기도를 한다는 건 왠지 바보같고 부끄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. 그래서 묵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.
꽃을 놓고 뒤로 물러서는 와중에 한 친구과 국화꽃 향기를 맡은 다음에 헌화를 하는 것을 봤습니다. 꽃에서 향기가 난다는 것을 잊고 말았습니다.
짧은 추모였습니다. 어설펐습니다. 제 민주 의식도 이렇게 어설프게 시작하겠지요. 그러나 이것은 불씨가 될 겁니다.
슬픈 일을 속마음 털어놓고 쓰는 글은 이것이 생애 최초인 듯 합니다. 이때까지 제 일기에도 쓴 적이 없었습니다.
(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, 퍼가거나 그러지는 말아주세요. 제가 부끄럽습니다.)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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